해리장애 (Dissociative Disorders)

 

- 정상적인 사람은 성격, 기억, 인지, 자기 정체감, 환경지각 등의 의식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자아(self)를 형성하고, 자기가 접하게 되는 모든 경험은 시간적 흐름과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일관성 있게 통합된 자기의식으로 계속 유지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관성 있는 한 개인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s)는 어떤 심리적 쇼크를 받아 갑작스럽게 의식에 붕괴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의식의 붕괴가 초래되고, 그로 인해 통합적인 자아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통합적인 자아기능이란 자신의 성격, 기억, 인지, 자기 정체감, 환경지각 등을 온건하게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해리(dissociation)란  '풀어져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옴'처럼, 의식의 통합적 기능이 통일성을 상실한 나머지 자기 자신, 시간, 장소, 상황, 현실감각과 지각, 주위환경을 파악하는 연속적인 자아로부터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을 뜻한다. 의식의 단절은 증상과 심각성에 따라 일시적일 수도 있고, 점진적일 수도 있고, 만성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해리가 오면 자기가 접하게 되는 경험 중 일부가 의식을 통해서 접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해리'라는 개념은 환자의 정신 깊은 곳에서 억압되거나 분리된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고, 환자가 이 억압된 부분을 의식 수준으로 되돌리게 되면 회복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해리장애는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였을 때 급작스럽게 나타났다가 곧 정상으로 회복되는 특징이 있다. 

 

- 해리장애는 어떤 뇌손상이나 신체적 질병과는 관련이 없다. 순수하게 심리적 기능손상에서 온다. 즉, 견디기 힘든 외상적 경험이나 심리적 쇼크에 의해 해리증상이 초래된다. 외상적 경험은 아동기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고, 심리적 쇼크는 스트레스 사건과 관련이 있다. 외상적 경험은 예컨대 혼란스러운 가족력, 부모로부터 고립되고 격리된 경험, 정서적 학대와 무시를 경험하면서 자란 사람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해리증상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심리적 쇼크는 재난이나 질병, 부부간의 심한 갈등, 자녀 또는 배우자의 사망, 이별과 배척, 극심한 경제적 궁핍, 강간 및 범죄의 희생, 목숨이 걸린 전투 참여,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것과 같이 심각한 스트레스 사건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해리장애는 외상적 사건이나 심리적 쇼크가 너무 충격적이고 혐오스럽기 때문에 의식의 단절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수단을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해리장애는 외부에서 작용하는 정신적 충격을 의식선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고, 내적 갈등에서 해방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 정상적인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경미한 해리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예컨대, 깊은 생각에 빠진 나머지 집으로 오는 길의 전환점을 놓칠 수도 있고, 책에 몰두하여 주변을 완전히 잊을 수도 있고, 최면상태 또는 종교적 황홀경에 의해 의식이 순간적으로 단절되는 수도 있다. 군대에서의 극한적인 생존훈련처럼 아주 강력한 스트레스 자극을 받게 되면, 잠깐 동안이지만 해리증상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해리장애는 증상이  '병적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병적인 경우란 자신의 정체감을 망각하는 것, 개인적인 사건을 회상하지 못하는 것,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행세하는 것, 자신이 살던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낯선 곳에서 방황하는 것 등이다. 때로는 자신이 매우 낯선 것으로 느껴지는 이인증, 외부 세계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비현실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 해리장애는 ①해리성 정체감 장애, ②해리성 기억상실증, ③이인증/비현실감 장애의 3가지 하위유형이 있다. 

다음은 해리장애의 하위유형과 주요 진단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하위유형	주요 진단 특징
1. 해리성 정체감 장애	한 사람의 내면에 2개 이상의 각기 다른 정체감을 가진 성격이 존재하는 경우
2. 해리성 기억상실증	자신의 과거(전부 또는 특정 기간의 기억)를 기억하지 못한느 경우            • 해리성 둔주 : 해리 상태에서 기억상실과 함께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방황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으로 행세하는 경우
3. 이인증/비현실감 장애	일시적인 자아감각의 변화로 현실감각이 장애를 받아, 평소와는 달리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해 낯선 느낌이 드는 경우

 

- 해리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유형의 진단기준이 가장 적절한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거나 모순되는 경우  '미분류형 해리장애'로 구분한다. 예컨대, 장기간 심하게 강압적으로 설득당했던 사람에게 해리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미분류형 해리장애'로 구분된다. 해리성 황홀경과 갠서증후군도  '미분류형 해리장애'에 속한다.

해리성 황홀경(dissociative trance)은 의식이 변화된 상태로서, 주의력과 인지력이 인접한 환경의 오직 한 두 개의 측면에만 국한되거나 집중되어 있고, 반복되는 일련의 행동이나 자세 및 어떤 소리를 나타내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떠도는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옮아 붙는 귀신 들림, 귀신이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들어 그 사람을 조종한다고 믿고 있는 미신적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를 빙의(possession), 또는 빙의 몽환(possession trance)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엑스터시, 신비주의적 경험, 영매(medium, 신령술로 죽은 자와 산자를 직접 매개할 수 있다는 인물), 무당의 신이 내린 상태(예: 신들림, 신끼)와 같은 행동을 나타내는 경우도 해리성 황홀경에 속한다. 해리성 황홀경은 특정 문화에 국한되어 유행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아모크와 베바이난, 말레이시아의 라타브, 북극지방의 피블로토, 라틴 아메리카의 신경발작, 인도의 빙의 등이다. 해리성 황홀경은 증상이 심각하고, 그 사람의 생활기능을 현저하게 손상시킬 때  '미분류형 해리장애'로 진단된다. 

 

- 갠서증후군(Ganser  syndrome)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 갠서가 처음으로 기술한 것인데, 의도적으로 정신과적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전에는  '요점에서 벗어난 대화' 또는 '유사한 대답'으로 불렸던 장애이다. 예컨대, 질문을 하면 다소 의식이 혼탁한 상태에서 질문의 의미를 알면서도 유사한 대답을 적당히 하고 넘어가려는 경우이다(해리성 기억상실증이나 해리성 둔주 때문이 아님). 한 예로 2+2는 5라고 한다든지, 4 ×4는 21이라고 하는 경우이다.

 

 

◆"사례 중심의 이상심리학"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