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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인지 ① 본문
-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이 다를 뿐만 아니라 특정한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도 다르다. 우유가 반쯤 담긴 컵을 바라보면서 비관주의자는 '우유가 겨우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는 반면, 낙관주의자는 '우유가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다'라고 생각하며 흡족함을 느낀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나를 무시하며 공격적 행동을 나타낼 수 있는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경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새로운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흥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며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동일한 상황에 대한 생각이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 특정한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은 개인의 성격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다.
1. 성격과 인지적 구조
- 인지(cognition)는 '앎'을 뜻한다. 인간은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지기능은 기억, 학습, 판단, 선택, 결정 등을 담당한다. 인간은 과거 경험에 근거하여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인간의 인지적 활동은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인지적 구조(cognitive structure)는 개인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저장하는 기억체계를 의미한다. 인지구조는 과거 경험의 축적물로서 외부자극을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인지적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된 심리적 구조로서 인지도식(schema), 신념(belief), 태도(attitude), 원형(prototyp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인지적 구조는 크게 두 가지 측면, 즉 인지적 구조를 구성하는 내용과 인지적 구조가 조직된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지도식은 개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다. 개인은 자기, 타인, 세상을 비롯하여 자신의 삶에 중요한 대상이나 주제에 대한 도식을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지도식은 자기 도식(self- schema)이다. 이러한 인지도식을 대상에 대한 과거 경험과 학습경험을 담은 인지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일상적 용어로 흔히 자기관,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신념체계를 뜻한다.
- 인지도식은 구조적 측면에서 개인차를 나타낼 수 있다. 자기 도식의 경우, 사람마다 그 체계성, 복잡성, 명료성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풍부한 정보를 담은 매우 정교한 자기 개념을 갖고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에 관한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비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한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를 잘 통합된 형태로 지니고 있는 반면,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우처럼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2. 자기 개념
(1) 자기 개념의 정의
- 인간은 누구나 '나'라는 자기의식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는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마음속으로 다양한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외부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자기의식은 인간이해를 위한 핵심적인 심리적 요인이기 때문에 많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현대 심리학에서 자기(self)라는 개념을 처음 학술적으로 논의한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William James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90년에 발간된 「심리학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자기란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라고 정의하고, 자기를 '인식주체로서의 자기(self as a knower)' , 즉 순수 자기(pure self)와 '인식대상으로서의 자기(self as a known)' , 즉 경험적 자기(empirical self)로 구분하였다. James는 인식주체로서의 자기와 인식대상으로서의 자기 모두 일관성과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정체감(sense of personal identity)의 바탕을 이룬다고 하였다.
- 자기에 관한 심리학의 이론적 입장과 연구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자기에 대한 연구들이 무수히 많을 뿐만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이론적 입장 역시 매우 다양하다. 현재 심리학계에서 '자기'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주제이며 자기(self), 자아(ego), 자기 개념(self-concept), 자기 표상(self-representation), 자기 지식(self-knowledge), 자기 체계(self-system), 자기상(self-image), 자아정체감(ego-identity), 자기 도식(self-schema) 등의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 개념(self-concept)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평가를 반영하는 인지적 관념'으로 정의된다. 자기 개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현상학적 접근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개념의 주된 기능과 특징을 여러 연구자의 주장에 근거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기 개념은 외부세계와 공간적으로 분리된 독립적 개체라는 의식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기 개념은 경계를 가지며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
② 자기 개념은 시간적을 지속되는 일관성 있는 동일한 개체라는 의식을 포함하며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누적으로 인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동일한 존재라는 자기 정체감을 갖게 한다.
③ 자기 개념은 다양한 과거경험을 조직적으로 축적하는 하나의 기억체계로서,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이며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기 개념은 신체적 자기, 정신적 자기, 사회적 자기와 같은 여러 가지 경험적 자기의 하위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자기 개념은 기술적 차원과 평가적 차원을 모두 가지고 있다.
④ 자기 개념은 경험에 의해 변화되는 역동적 조직체로서 경험의 누적, 특히 중요한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 자기 개념은 단순히 과거경험을 저장하는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실체다. 개인이 성장하고 발달함에 따라 자기 개념은 점점 더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으로 발전한다.
⑤ 개인은 자기 개념의 여러 측면과 관련해서 자기 존중감을 고양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개인은 자신의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유지시키고자 하며 이러한 자기 개념이 위협받으면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위협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방어가 성공적이지 못하고 위협이 지속되면 궁극적으로 심리적 부적응과 더불어 성격의 전반적 외해가 일어날 수 있다.
(2) 자기 개념의 구조
- 자기 개념은 '나'에 관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기억체계로서 매우 복잡한 인지적 구조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기 개념이라는 인지적 구조의 주요한 특성은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인 구조를 지닌다는 점이다. James(1890)는 경험적 자기를 크게 세 가지 자기 영역, 즉 물질적 자기, 정신적 자기, 시화적 자기로 범주화하고 있다.
물질적 자기(material self)는 자기와 관련된 물질적 측면 또는 소유물들로서 가장 중심부에 신체가 위치하고 다음에 의복, 집, 소유물 등이 차례로 포함된다.
정신적 자기(spiritual self)는 개인의 내적 또는 심리적인 제반능력과 성향을 지칭한다. 이러한 정신적 자기는 반성적 과정의 결과로써 자신의 성격, 지적 능력, 지식, 가치관, 인생관 등을 포함한다.
사회적 자기(social self)는 개인이 동료들로부터 받는 인정을 지칭한다. 가족, 연인이나 배우자, 친구, 직장동료들로부터 받는 사랑, 명성, 명예 등이 사회적 자기를 구성한다.
(3) 자기 개념의 여러 차원
- 자기 개념이라는 인지적 구조의 또 다른 주요 특성은 다차원성이다. 자기 개념은 다양한 차원이나 관점에서 기술되고 평가된다. Rogers(1951)는 자기 개념이 현실적 자기(real self)와 이상적 자기(ideal self)라는 두 차원으로 나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현실적 자기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상태에 대한 지각을 의미하며, 이상적 자기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모습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불일치도가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 부정 정서의 발생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기 불일치 이론을 제안한 Higgins(1987)에 따르면, 자기의 평가과정에는 두 가지의 요소, 즉 자기에 대한 관점과 자기의 영역이 중요하다. 자기에 대한 관점은 '나에 대한 나의 관점'과 '나에 대한 타인의 관점'으로 나뉜다. 자기의 영역은 현실적인 자기, 이상적인 자기, 의무적인 자기로 나뉜다. 그에 따르면,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구체적 정서경험은 이러한 인지적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우울은 '현실적인 자기'와 '이상적인 자기'의 불일치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인 반면, 불안은 '현실적인 자기'와 '의무적인 자기'의 불일치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이다. 특히 '현실적인 자기'나 '타인의 관점에서의 의무적인 자기'와 불일치하면, 타인으로부터의 징벌과 처벌을 예상하게 되며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현실적인 자기'가 '나의 관점에서의 의무적인 자기'와 불일치하면, 죄책감, 자기 경멸감, 불쾌감 등의 형태로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 Markus(1990)는 자기에 대한 표상이 매우 다양한 차원의 배열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표상의 주요한 차원은 긍정적인 나, 부정적인 나, 현실적인 나, 이상적인 나, 의무적인 나, 실현 가능한 나, 원치 않는 나, 희망하는 나, 두려워하는 나와 같이 매우 다양하다. 요컨대, 자기 개념은 다면성과 다차원성을 지닌 매우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 개념의 구조는 개인이 성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점차 세분화되고 정교해진다. 또한 개인의 성장 경험과 심리적 특성에 따라 자기 개념의 구조에 있어서 개인차가 나타나게 된다. Linville(1987)은 자기 복잡성 가설을 제시하면서 자기 구조의 정교성, 변별성, 통합 정도에 개인차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구성하는 요소나 속성들은 매우 다양하고 정교하게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들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 반면에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관계 역시 잘 통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유컨대, 전자의 경우는 자기라는 건물을 여러 층으로 구분하고 층마다 구획회된 구조를 지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결통로를 통해 소통이 잘 될 수 있도록 구성한 반면, 후자는 건물의 층이나 방의 구조가 잘 구획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에서 인용함.